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 (문단 편집) == 기타 == JTBC에서 방송중인 [[세계 다크투어]]에서 이 사건을 다뤘는데, 위의 정보와는 내용이 약간 다르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있다.[[https://youtu.be/gC6Mht3LYPg|#]][[https://youtu.be/eoKp-0TUMRY|#]] * 보통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모든 비난이 집중되는데, 문제의 발단은 아버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과, 일각에서는 일본의 호적 문제라고도 보고 있다. 일본의 호적에서는 부부와 미혼의 아이가 가장 작은 가족 단위인데, 혼인신고도 남편이 해야 하며 부부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경우, 1차적으로 아버지에게 아이의 모든 권리가 있었다고 한다. 호적에 부인을 올리지 않고 출산 이후 사라져 버리는 경우나 일부러 부인을 호적에 올리지 않는 경우에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호적에 올라갈 수 없게 되어 출생신고도 안 된다는 것이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아버지가 사라지면서 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한다. [* 한국의 경우는 법률상 혼외로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는 어머니가 하도록 '''의무화''' 되어있다. 일본과는 달리 남편이 없어도 출생신고를 할수있는것. 하지만 반대로 미혼부의 출생신고에 문제가 많았다. [[가족관계등록비송]]참고 ] * 1987년 7월, 도쿄 소방청에 둘째가 신고를 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내용은 '엄마가 많이 아파요.'였는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쓰레기로 가득찬 집 내부를 보게 됐고, 아프다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일단 철수하게 된다. 출동한 경찰은 어처구니 없게도 집 안 상황을 보고서 부모님이 어디 있는지, 집 안이 왜 그 지경인지, 누가 신고했으며 사고 경위가 어떻게 된 것인지 등 아이들에게 일절 묻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찾아갔을 때 '일이 늦게 끝났고, 친구의 아이들을 잠시 봐주고 있는 것이다. 괜찮다.' 라는 어머니의 말에 경찰이 철수했다고 한다. 이로써 당국이 아이들을 구조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를 놓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 막내의 사망사건은 넷째의 입가에 묻은 김 조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집 안에 컵라면을 놔뒀는데 가뜩이나 부족한 음식을 말도 없이 먹은 것으로 보고 첫째가 넷째를 다그치자 이를 보고 놀란 막내가 소변 실수를 했고, 이로 인해서 울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의 악행이 진행되던 중 그만두라고 말렸다고 한다. 이후, 과거에 어머니가 셋째의 시신을 처리했던 방식대로 비닐에 싸서 놔뒀다가 며칠 뒤 부패로 인한 악취 등을 견디지 못하고 친구 둘과 함께 유기를 계획한다. 유기할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에 탑승하지만 다시 돌아올 길을 걱정한 친구 한 명이 도중에 다시 돌아가버리고, 막내의 시신은 히즈지야마 공원에 묻었다고 한다. 첫째가 막내의 시신을 유기한 이유로는 부패가 진행 중인 시신을 방치해서 문제가 생길 경우 주변에서도 자신들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어머니가 곤란해져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 1987년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아이들이 발견되기 전 6개월 전부터는 아예 아이들을 보러 오지도 않았고 첫째만 생활비를 받기 위해 외출을 했다고 한다. 하다못해 공과금을 해결한 상태에서 생활비를 줬다면 아이들의 생활이 그 정도로 처참하지는 않았을 텐데 대충 몇만 엔 쥐어주고 돌려보내는 식이었고, 공과금에 대해서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전기와 수도가 끊어지면서 어머니의 명령('외부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 것.' 등)도 거부한 채 가까운 공원 등에서 간단하게 씻거나 물을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집 안에 있을 땐 바깥으로 소리가 나가지 않도록 창문조차 열지 않았다고 한다. * 경찰과 아동복지 상담소 직원에 의해서 발견된 날 아이들 중 한 명이 경찰에게 용기를 내서 했던 말이 '빵 좀 주세요.'였다고 한다. 극심한 영양실조로 인해 건강 상태가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둘째와 넷째는 보호소와 병원으로 이송된다. 특히 넷째는 약 10kg이 조금 넘는 기아에 가까운, 심지어 위험하다는 판단이 즉시 내려질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현장에서 '얘들은 사촌이다. 친동생이 아니다.' 라고 한 뒤 도주했으나, 동생들 걱정과 다시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3일 만에 경찰서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두 아이 모두 자신의 동생이며 자신이 돌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 어머니가 나타나서 막내는 어디있냐고 소동을 피우는 과정에서 막내의 사망이 밝혀졌다고 한다. * 셋째가 발견된 것은 7월 17일이 아닌 22일로, 실내 수색 중 벽장 안에서 시신이 발견됐다고 한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골절 등의 학대 흔적이 없었고, 첫째와 어머니의 반응 또한 다소 담담했던 것으로 보아 유아돌연사로 보고 있다고 한다. 막내가 사망했을 때에도 비닐에 싸 벽장에 넣어놨던 이유 또한 어머니의 과거 행동을 보고 따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못했고 외부에도 알릴 수 없는 일이기에 첫째는 어머니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가 부패로 인해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 유기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 첫째는 상해치사와 시체유기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판결문 내용 중 "어머니만 있으면 일어날 수 없었던 사건이며 교육적 조치가 필요하다. 소년원이 아닌 아동 자립지원시설(보호원)에 보낸다."는 내용이 있었으며 어머니의 경우 보호자 유기, 유기치사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결과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이 내려진다. 판결문 내용 중 "출생전달을 하지 않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하는 등 보호자로서 자각이 없고 방치가 계속되면 생명이 상실될 위험이 있다. 부모의 책임을 포기한 죄는 무거우나 동거 상대와 결혼하고 보호를 맹세하고 있는 것을 고려, 자력갱생의 기회를 주기로 한다." 고 되어 있는데, 낮은 처벌과 판결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처벌을 위해 또 다시 가장 심각했던 문제인 보호자 부재 상황을 만들기보다는 기관의 관리하에 보호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아사히신문 토요판 영화의 여인에 따르면 이후 첫째는 학교에 다시 다니면서 학생회장을 역임하였다고 보도하였다. * 사망한 셋째와 막내는 시신을 거둬서 화장을 했고 남은 아이들 셋은 어머니에게 입양이 되는 방식을 통해 정식으로 가족이 됐다고 한다. 문서에서는 첫째의 행방은 알 수 없다고 했으나 방송에서는 세 아이 모두가 입양 절차를 밟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여기에서 애초에 출생신고를 직접 할 수 없었다면 입양의 방법을 선택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돼 있으면서 아이들을 충분히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심사를 거쳐 진행될 텐데 본인에게는 해당 사항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고, 수 년에 걸쳐 같이 살아왔던 아이를 내치지도 못한 채 방임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첫째가 부모의 부재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지키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마이니치 신문에서 보호중인 동생들이 오빠를 변호한다는 작은 기사를 보게됐는데 오빠가 친절했다라는 관점으로 기사가 난것을 보고 이를 토대로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